세미나 VI - 조선령
‘잘 말하는 전시’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전시는 기획자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개념에 대한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즉 개념의 도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변주, 확장, 반복과 같은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획자가 말하는 혹은 그 모티프에 작품을 리드미컬하게 연류 시키는 것이 큐레이팅의 중요한 기술일 것이다.
전시는 완전히 감각적일 수도 완전히 개념적일 수도 없다. 두 가지가 완충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품이 그저 주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지양하고 주제가 전시 내부와 구조를 관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주제가 내부를 관통하게 하는 것, 쉽지 않은 부분인데 여기서 큐레이터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큐레이팅이란 마치 굴러가는 주사위 같이 사물의 다양한 각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숨겨진 모티프를 다양한 작품 곳곳에 흡착시키는 것 그래서 관객에게 그것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놀이’와 같은 전시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전시로 이어진다 특히 주제에 부합하는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은 풍성한 전시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더불어 미술사적 연구도 중요하다. 유사한 주제를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풀어갔었는지를 참고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시는 역사를 창조하는 작업일 것이다. 특정적인 개별 전시들이 모여 하나의 미술사를 이루듯,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메시지가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과 연구를 통해 작품과 작품 사이를 관통하는 감각적인 요소와 구조적인 리듬이 만들어질 때 전시가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전시를 위해 주제가 다양한 레벨에서 되풀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전시장 속에서, 작품에서, 그것을 포괄하는 상위 레벨에서 나오게 되면 이상적일 것이다.
예술과 사람, 그리고 현실과의 매개
전시의 뼈대가 되는 주제는 기획자 자신이 영감을 받은 한 작품에서 출발할 수도, 그 외 영화나 문학, 혹은 신문기사의 한 제목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큐레이팅은 현실의 문제를 예술로 번역을 하는 것으로, 현실의 논리를 미술이 따라가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 내재적 논리로 잘 번역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미학적 차원 안에서 작가들의 작품이 소재주의로 그치지 않고 한 층 더 깊이 있는 전환을 통해 발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의 문제와 작품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개념(전시주제)을 더해 감각(작품)으로 번역하는 것은 참여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어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내고 작가 스스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전시의 일부이고 기획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기획자 역시 작가의 연구와 표현 방법 등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주제에 대한 단순한 공감을 넘어 상호 영향을 주고 받게 되면 더욱 깊이 있는 큐레이팅을 실천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