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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창작자 지원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세미나 III - 신형철

2014.07.19

신형철은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온전히 ‘작가의 의도’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원문을 ‘독자의 의도’대로 마음껏 창조해 나가려는 유혹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움베르트 에코의 문장을 예로 들었다. 
 
“모든 텍스트는 무한한 독서를 야기하면서도 엉뚱한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 텍스트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 해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무엇이 그릇된 해석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움베르트 에코, 『해석의 한계』, 2009, p. 147.) 
 
에코는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 사이에 ‘텍스트의 의도’가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는 텍스트의 해석의 경우가 다양하고 무한하다고 해서 무절제한 해석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며, 원문이 지닌 본 의도는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해석과 글쓰기에 서툰 대부분의 독자들은 무한하고 참신한 해석과 무절제하고 엉뚱한 해석 사이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이에 신형철은 글을 읽을 때 진입하게 되는 세 가지 층위(주석의 층위->해석의 층위->배치의 층위)를 제시한다. 먼저 주석의 층위는 텍스트에 사용된 단어들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고, 사건들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인된 사실 위에서 의미를 추론해내는 단계가 해석의 층위에 해당되는데, 내재적으로 일관성 있는 서사적 논리를 추출하는 것이 관건이다. 끝으로 배치의 층위는 시대와 연관된 이념이나 양식의 좌표에 글을 배치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층위들은 텍스트의 ‘사실을 확인’하고 ‘의미를 추론’한 다음 ‘의의를 부여’하는 역할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텍스트의 의도를 외면하지 않고, 해석의 복수적 가능성을 살리기 위하는 작업의 단계라고 생각된다.
 
“최근 어느 대담에서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신형철은 다시 ‘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거나 특별한 전략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그의 이야기에서 문학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런 그의 태도를 보면서 비평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넘어서 어떤 태도에서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일종의 모범답안을 구한 것 같았다. 종래의 미술비평들을 보면 때로는 거의 작품을 도살하는 행위에 가까운 비판을 담은 글도 있고, 반대로 부정확한 칭찬으로 웃음거리를 사는 글도 있다. 그러나 삶의 한 부분으로써 예술을 생각한다면,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는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비평이 반드시 작품을 비판하는데 사명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진심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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