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II - 안소현
큐레이터의 선택과 분류의 이데올로기 : “어떤 전시도 중립적일 수는 없다”
큐레이터는 전시의 저자로서, 선택과 분류의 권한을 갖는다. 특히 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할 때 작품을 분류하고 선택하는 입장이므로, 어떤 전시도 중립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전시를 하는 공간에 어떤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큐레이터의 선택은 전시의 결을 다르게 만든다.
한 예로, 마네의 소장품 전시가 열린다고 가정해보자. 마네의 연대기적 작품을 연속적으로 두는 것과 동시대에서 활동하는 현대 예술가의 작품을 나란히 두었는가에 따라 관람자가 전시를 감상하는 것이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는 전시를 통하여 스펙타클을 만들어 내는 것을 고민한다. 물론 전시에서 예술작품이 만들어내는 의미층위도 중요하지만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감각, 스펙타클한 장을 만들어내어 미적인 감각을 관람자에게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큐레이터의 선택과 분류는 전시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구현까지 자연스러운 이데올로기적 개입을 하도록 만든다.
작품제작 커미션 및 프로젝트 : 작가로서 큐레이터
과거에 작가들이 전시를 주로 기획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큐레이터들이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거나 작품 제작의 커미셔너 역할을 맡게 되면서 작가로서 큐레이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유명한 스타 큐레이터들의 등장은 실제로 작품 제작에 깊게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한 예로 하랄트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는 스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로서, 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 전시는 제만을 국제적인 큐레이터로 급부상시켰다. 이러한 작가로서 큐레이터, 스타 큐레이터들의 등장은 전시의 형태로만 가능한 작품들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이제 전시도 큐레이터가 만들어내는 창작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연구되기 시작한다.
디스플레이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바로 디스플레이다. 과거부터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디스플레이는 전시장의 전체적인 배색, 작품을 거는 방식, 관람자의 동선, 조명 및 설치 등 조형적 개입과 관련을 맺고 있다. 한 예로, 미술관에서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전시를 위한 디스플레이는 전시장 벽 색을 녹색으로 도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붉은 색은 작품의 수가 많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 외에도 독일, 베를린 제 11회 《다다 국제박람회》(1920)의 경우, 디스플레이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이루어졌다. 전시장 천장에 인물상을 직접 달아보거나, 작품을 무질서하게 걸어두는 시도들이 나타나면서 이는 작품이 지니는 내적 의미 못지않게 전시 디스플레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과거보다 더 많은 매체들의 등장은 디스플레이의 개입이 전시에 있어서 얼마나 강력한 기제로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텍스트
큐레이터가 전시를 할 때 텍스트(글)와 작품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특히 큐레이터가 작품에 관한 소개 글 혹은 비평문을 쓰게 될 때 작가가 작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큐레이터는 글을 쓰거나 비평하고자 할 때 작품에 관하여 끊임없이 언어화 될 수 있는 부분들을 탐구한다. 다시 말하면 큐레이터는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이 전시 혹은 글로서 외부세계와 소통하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본인의 작품이 일정량 이상으로 담론화되거나 한정된 단어로 귀결되는 외부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글을 쓰기 이전에 작가와 작품을 심도있게 이해하고 관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며 자신의 글이 작품의 의미를 왜곡하지 않고 적절하게 전달하는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큐레이터에게 있어서 글은 창의적인 접근인 동시에 심사숙고 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