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V - 서동진
1) 예술가의 노동에 관한 이해
작가들이 모이면 자주 나누게 되는 대화 내용 중 상당수가 기금, 작업비, 그리고 생계에 대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동진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그것은 돈에 관련된 주제가 아닌 노동, 즉 자본 노동자로서의 아이덴터티에 관련된 것이라고 답하면서, 지난 20-30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 가운데서 노동과 노동하는 주체에 관한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가라고 했다. 미술가처럼 일하고, 미술가처럼 노동한다고 했을 때 노동이 미학화, 심미화되었다고 얘기한다. 이때의 노동은 예술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 즉 자아실현으로서의 일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한 보상, 자기 실현에 대한 일종의 수고비를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경우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노동 사례인 임금노동이 아니라, 노동 아닌 비노동의 세계, 다시 말해 사회적 선행에 대한 사례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에서 노동 아닌 노동으로 존재하고 있던 세계가 일반화되는 사례를 얘기하며, 대표적인 경우로 프로야구 연봉 지급 문제를 언급했다. 여기서 말하는 연봉은 한 선수가 일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그가 보여준 재능, 팀 성적에의 공헌 정도를 고려하는 독특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연봉의 모델이 일반화 되어, 모든 노동의 보상 방식이 되었다. 예술가의 경우도 그러한데, 유명 작가의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그 예술가가 수고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고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동진 교수는 그러나 문제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처럼 일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노동 모델의 변화에서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2) 예술가와 노동의 아이덴터티
서동진 교수는 사치품 산업의 범람하는 이유가 노동의 아이덴터티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연봉은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닌 눈부신 재능과 역량에 대한 보상이므로,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스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위계질서가 미술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스타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 최근에 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고 있는 미술가 오디션 제도가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그러면, 퍼블릭 아트나 켜뮤니티 아트라고 불리는 예술의 사회적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는 어떠한가? 한편, 서동진 교수는 90년대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변화된 미술교육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 미술시장 안에서 팔 수 있는 재능의 카탈로그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생긴 독특한 미술교육의 양상인 졸업전시와 포트폴리오 위주의 교육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3)개인적 경험인가, 사회적 관계인가
서동진 교수는 예술적 실천에서 노동을 주제로 다룰 때 고민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예술가들은 종종 ‘노동’이나 ‘생존’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그 자체로 자신이 비판적이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건 예술, 노동, 경제와 관련된 우리 세대의 지배적인 상상을 참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노동 세계의 변화 속에서 노동을 예술적 실천과 연결시키면 근사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행동은 우리를 둘러싼 지배적인 노동의 이미지와 관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반동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예술가들에게 비평을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라고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큐레이터 워크샵 참여자들은 최근 다수의 작가들이 개인에서 출발해 사회적 관계로 나아가는 경향에 대해 서동진 교수의 견해에 대해 듣고자 했다. 서동진 교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작가들이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려우며, 노동자의 삶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반성, 체험, 회고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 경험, 기억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사회적 세계가 존재하는데, 개인적 경험에서 바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최근 사회적 관계를 둘러싼 작업이 가진 맹점이다. 사회적 관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작업의 형태는 연회, 파티, 사교모임 등으로, 이때 개인들이 공유하는 사교적 감정의 세계가 상상하는 사회는 큰 묶음을 만들 수 없는, 단지 개인들 여럿의 모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관계 미학’ 계열의 작업들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