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II - 문영민
7월 9일, 두 번째 워크샵에는 한국의 특정한 현실을 반영하는 전시, 출판, 작품 활동을 해 온 문영민 교수를 초대했다. 워크샵 참가자들은 그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전시 기획과 글에 관한 의견, 그리고 한국 사회를 향한 그의 시각에 대해 듣고자 하였다.
1) 시공간을 넘어서, 지난 1년 한국에서의 경험
1980년대 중반 한국을 떠나 오랜 세월을 북미에서 보낸 문영민에게 한국에서의 방문 교수 경험은 남달랐다. 그는 자신의 북미와 한국 이외의 포괄적인 경험의 부재로 비교 범주에 한계가 있지만, 이민 전후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삶은 모든 국면에서 유행에 상당히 민감함을 느꼈다고 했다. 표피적으로는 다양화 되었지만 실상은 규범에 갇혀 있고, 역사, 본질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경제적 가치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것들에 무관심한 채, 빠른 페이스로 새로운 트렌드와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쫓는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국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80년대와 90년대에는 특정한 형식과 개성이 드러나는 대표적 작가들이 존재했지만 2000년대 이후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특정한 형식 대신 물리적인 혹은 존재론적인 ‘가벼움’을 표상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그는 한국 미술계에 만연한 ‘구조적 허술함’을 지적하였는데,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비평의 취약함을 들었다. 아카데믹한 비평도 취약하지만, 저널리스트적 비평의 부재, 원고료와 저작권 문제 등을 개선하여 좀 더 치열한 비평이 필요하다고 했다.
2) <불일치(Incongruent: Contemporary Art from South Korea)>전과 전시 방법론
한국에서 경험한 군사정권하의 폭력과 억압의 기억을 북미에서 떠올리며 문영민 교수는 <불일치>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미국과 무관하지 않음과 모더니즘과 콜로니얼리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했다. 전시기획의 예산문제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모더니즘의 잔재인 회화와 조각을 다루지 않고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불일치>전의 전시 방법론은 시대적 중요성과 지리적 요소의 표출이었다. 시대적 중요성으로 한국전쟁과 민주항쟁이라는 틀과 지리적 요소로는 동두천, DMZ, 미국 등을 다루었다. 또한, 그는 국가적 경계와 문화 사파리를 지양하고, 관객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자 했다.
3) 90년대 한국미술의 이슈들
민주화 운동과 미술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미술이 왜 존재하는가에 관한 연구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민중미술이 정치적 탄압의 대상에서 국공립 미술관 소장품 및 갤러리 전시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된 모순성, 민중미술의 복잡한 모순성을 이해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 이후 미술을 시각문화의 넓은 범주에서 해석하게 된 가능성, 그리고 여러 비엔날레 등을 통해 사진을 비로소 미술의 한 형식으로 보게 된 점 역시 지적했다. 또한 비엔날레를 통한 국제적 시각과 재지역화의 양산 속에서 글로벌한 미술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4) 실패와 한국 현대미술
그의 포스트 민중미술에 대한 입장은 양가적이다. 7~80년대의 정치적 특성과 현시점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은 분명 다르지만, 단절이 있는 동시에 연결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한편 정체성의 문제, 즉 복합적이며 비균질적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일본과 미국에 약자였던 한국이 베트남에게는 강자가 되어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한류를 통해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모순적인 순환 구조의 상황 등을 언급하며, 그는 타자와의 연맹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였다.
마지막으로 문영민 교수가 객원 편집한 온라인 사진비평 저널 Trans Asia Photography Review (http://tapreview.org)의 최근 아시아에서 전쟁 이후의 후유증을 주제로 한 특집호는 워크샵 참가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이 특집호는 특히 전쟁을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전쟁의 외상이 어떻게 남아있고 지속되는지, 또 그것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진작품과 그와 관련된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참여자들은 문영민 교수가 편집자의 글 마지막에서 언급했던 “전쟁과 폭력은 ‘끝나는’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공감하며, 여전히 전쟁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분단국가 한국의 현실을 되새겨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