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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창작자 지원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세미나 Ⅵ - 종합재미농장

2025.12.10

한 해를 갈무리하고 다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12월. 양평에 위치한 안정화, 김신범 농부님들의 종합재미농장을 찾았다. 농한기인 겨울의 밭. 모든 작물이 숨을 죽이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움트고 자라며 활동한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삽질을 하며 다듬고 두둑들. 맨 땅이 보이지 않도록 낙엽과 마른 풀과 줄기, 땅콩 껍질, 짚더미로 이불을 덮었다. 옥상에 올라 밭을 내려다 보니, 황량한 겨울의 풍경 가운데에서도 조금씩 다른 두께, 길이, 색을 지닌 두둑들이 예쁘다. 다품종 소량 재배를 하는 농가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지.   

  

해를 맞이하며 두 분은 밭 지도를 그리며, 이 두둑들에 어떤 작물들을 심을 지 디자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2017년의 밭 지도를 보니, 방울토마토 옆에 토마토, 그 옆 절반은 오이, 남은 절반에는 수세미, 그 옆은 고추와 가지 … 그러다 어느 한 두둑에는 무려 10여종 이상의 작물 이름들이 칸칸이 적혀있다. 알아볼 수 있는 이름만 적어보아도, 아욱, 토종 배추, 적겨자, 근대, 시금치, 적경치커리, 뿔시금치, 비타민, 쑥갓, 돌나물. 씨앗에서 출발한 이 친구들이 싹을 틔우고, 뿌리와 줄기,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씨앗을 만들고, 수확을 할 때까지, 계절이 변화하며 다채롭게 변화하는 밭의 모습들을 사진 앨범으로 보았다. 풍요로운 풍경.  

 

씨앗을 받는 농사. 거대종자회사에서 교배되고 수정된 씨앗들이나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아니라, 토종씨앗을 나눔받거나 심고 키우고 거두는 순환의 과정. 작물의 시간에 귀를 기울이려면, 느리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 자그마한 유리병에 정리된 색색의 씨앗들. 노랑 시리즈(노랑팥, 노랑완두, 노랑녹두, 속노란 서리태, 노랑차조..), 쥐 시리즈(쥐이빨옥수수, 쥐꼬리무, 쥐눈이콩), 말이빨콩, 한아가리콩 등. 이름을 불러보고, 적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따뜻한 옥수수 차와 무차를 나누어 마시고, 다섯 가지 고구마 (흰고구마, 물고구마,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꿀고구마)를 하나하나 맛보며, 작물에 대해, 씨앗에 대해, 농사짓는 일에 대해, 농사짓는 삶에 오기까지의 여정, 수확을 하고, 나누고, 요리하고 먹는 법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의 보따리를 들었다. 아! 재미. 재미. 재미있다.   

  

우리를 쉽사리 잠식하고 마는 거대한 자본의 구조와 논리에서 벗어나, 진짜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 물질보다는 재미와 이야기로 풍요로운 삶. 앞으로도 “재밌게 사는법”에 대해 더 잘 배우고 싶다.   

  

– 전지희 (DCW 2025)    

 

 

 

 

 


 

 

 

 

사진: 이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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