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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창작자 지원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세미나 XIII - 김재리

2022.01.15

안무를 낯설게 하기

박유진 (DCW 2021)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2021 13차 세미나에서는 김재리 드라마투르그를 만나서 함께 시간성, 퀴어링의 전략, 관객과의 관계 등 안무를 중심으로 여러 요소를 성좌처럼 이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본 글의 제목은 김재리의 표현인 ‘Queering Choreography: 안무를 낯설게 하기’에서 가지고 왔다. 김재리는 워크숍을 시작하며 춤보다는 안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는 안무가 큐레토리얼 실천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리에 따르면 안무와 춤은 구별되어야 한다. 안무는 여러 시간대를 동시다발적으로 고려하여 춤을 문법화한 언어적 사건이다. 춤이 현재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안무는 과거, 발생 직후, 그 후의 기록까지 고민한다. 따라서 안무는 현상이나 결과물보다는 여러 기재의 구조이다.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모든 퍼포먼스를 ‘춤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재리는 화이트큐브 혹은 미술관이 어떠한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특정한 서사만을 위해서 신체를 전시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하면서 안무에 주목하는 이유를 밝힌다. 안무는 우리가 규칙이나 규범들, 자기만의 언어에 대해 고찰할 가능성을 넓혀 준다.

 

김재리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퀴어적 관계 맺기이다. 안무의 기원은 규칙 만들기에 있으며 규칙을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개별적인 신체에서 발생하는 감각, 시간성, 운동성을 다른 방식으로 창조할 수 있다. 이와 연결 짓자면 퀴어링의 전략이란 규범이 작동하는 방식을 해체하고, 어떻게 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 비판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즉, 안무에 집중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태를 만든 조건에 대해서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조건의 발동을 통해서 퀴어적 전술을 택한다는 것이다. 

 

정상성을 규정하는 사회적 질서와 제도 안에서 개인은 쉽게 취약해지면 불안정성에 함락된다. 우리는 취약해질 때 함께 연대하며 시위를 시작하는 등 신체를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퀴어적, 정치적 몸짓의 출발점이다. 김재리는 미술관이 아닌 시위의 현장이나 장소에서 안무적인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불안정성과 취약성은 무용의 본질과 닿아있다. 항상 바뀌고, 사라지고,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춤은 본래부터 퀴어적이었다.

 

김재리는 참여자들에게 퀴어링의 여러 관점과 전략을 소개하였다. 퀴어링의 전략에서 중요한 관점 중 하나는 원료(Raw Materials)로서의 신체이다. 안드레 레페키(Andre Lepecki)가 질료로서 신체인 신체성(corporeality)가 제안한 것처럼 신체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탈피하고자 시도들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중립적인 신체를 강조하는 모더니스트의 입장과 달리 신체를 하나의 물질로 다룬다는 것은 신체를 열려있는, 잠재성이 가득한 개체로 본다는 뜻이다. 이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으로 김재리는 자비에르 로이(Xavier Le Roy)의 <Self Unfinished>(1998), 메테 잉바르첸(Mette Ingvartsen)의 <Manual Focus>(2003) 등을 꼽았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신체를 다루는 조건을 바꾸어 이에 따라서 다른 안무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략으로 김재리는 부드러운 안무(Soft Choreography)를 언급하였다. 메테 잉바르첸은 <69 Positions>(2014)를 통해 누디티에 대한 아카이브적인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포르노그래피가 자본과 결탁되면 신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시되는지 비평하였다. 저항의 몸짓이 신자유주의적 수행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잉바르첸은 전체적인 안무를 허술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어 관객의 개입을 유도하였다. 관객이 위반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는 부드러운 안무는 도제식 안무 구성에 반대하며 모두가 객체가 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태도를 취한다. 김재리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관객 참여형 공연과는 다르다. 관객 참여형 공연은 매뉴얼과 자본화와 연결되어 있다면, 부드러운 안무는 자기 실패를 염두하며 취약함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시간성 또한 안무를 통해 취할 수 있는 주요 퀴어링의 전술 중 하나이다. 안무는 시간성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지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느릿느릿하거나, 지연되거나, 무력함으로 가장하는 등 시간성의 다름은 다른 정치성을 생산한다. 이는 분과 침으로 나누어진 시간의 근대적 논리를 비판하기도 한다. 댄 도우의 <On one Condition>(2017)의 렉처 퍼포먼스는 본인의 신체로부터 발생한 일상의 다른 감각들을 소개하는데,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양말 신는 작업을 긴 시간 동안 선보였다. 양말 신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관객에게 다른 신체의 시간과 감각을 제공한다. 

 

퀴어링의 전술을 논의하던 중 참여자들은 김재리에게 관객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였다. 김재리는 구조를 생산하는 조건을 검토한다는 측면에서 안무가 큐레토리얼한 부분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안무가와 큐레이터 모두 상상력을 촉진할 수 있는 다른 방식과 조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관객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관객과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김재리에 의하면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이벤트를 전달하거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과 관계를 맺기 앞서서 기획자 혹은 안무가는 본인이 보고자 하는 신체와 욕망에 대해서 추적해야 한다. 그 뒤에 신체가 움직인다. 

 

제레미 웨이드(Jeremy Wade)의 ‘Future Clinic for Clinical Care(FCCC)’는 관객과의 관계를 고찰한 좋은 예시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연, 큐레이팅, 컨퍼런스, 파티를 비자 발급 장소, 수족관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한다. 제레미는 미래에서 온 여성 간호사의 입을 빌어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틀 안에서 날카롭게 현실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눈 여겨 볼 점은 제레미가 명확한 관객 타겟팅을 통해 관객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선 파티에 초청된 사람들은 면전에서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디스코 파티에 남은 사람들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이 된다. 이는 제레미가 철저한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계급, 계층, 성지향성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부터 나아가기 때문이다. 

 

김재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언어가 부족하다고 말하였다. 퀴어라는 거대한 용어 내에서도 더 많은 언어가 발굴될 필요성이 있다. 제레미가 왜 벗고 퍼포먼스를 하냐는 질문에 자신이 취약해져야 주변 것들이 강해진다는 답을 한 것처럼, 안무적인 것이란 관조와 관망이 아닌 부딪히는 것이다. 안무는 시간적인 프로젝트로 현재에 정착하지 않고 찰나에 복잡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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