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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창작자 지원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세미나 XI - 김형식

2021.11.27

좀비로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읽기 

최선주 (DCW 2021)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11차 세미나는 문화연구자인 김형식의 저서 『좀비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좀비학』은 공포의 대상인 좀비를 새로운 세계를 욕망하는 존재로 다시 읽는 시도이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앞으로 있을 전시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키워드를 발굴하고 고민해보고자 하였다. 


김형식은 ‘좀비-되기의 존재론'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시작하며 질 들뢰즈의 “되기(becoming)” 개념을 존재론, 정치학 그리고 좀비학으로 확장하고자 하였음을 밝혔다. 좀비는 자본가적 괴물인 뱀파이어, 초월적인 신체 능력을 갖춘 늑대인간과 달리 늘 좀비 떼로 등장하며 압도적인 숫자로 인한 감염의 공포를 수반한다. 김형식은 좀비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한 부두교의 형벌과 좀비에 내재한 하층민적 정서를 연결한다. 이 형벌은 인간을 생각 없는 노예로 만드는 형벌이다. 예컨대 최초의 좀비 영화인 <화이트 좀비> (1932)에서 좀비는 노예 그 자체를 상징한다. 20세기 초중반 서구 철학을 지배했던 데카르트의 존재론처럼, 인간(백인 남성)과 좀비라는 명확한 구분법이 이 영화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좀비는 조금씩 이분법 구조에 침입하여 이를 무너뜨리는데,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에서는 초자연적인 주술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서구 문명을 묘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21세기형 “뛰는 좀비”에서 더 두드러진다. “뛰는 좀비”는 봉합되지 않는, 해결 방법이 없는, 봉합되지 않는 좀비이다. 좀비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정상 가족의 해체, 카니발리즘, 백인이 아닌 흑인 주인공 등 기존 가치 체계의 붕괴를 암시한다. 좀비 영화는 1990년대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겪으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90년대 좀비 게임으로도 확장된다. 21세기가 되면서 좀비는 바이러스라는 과학적 근거를 획득하고, <28일 후>(2002), <레지던트 이블>(2002), <워킹 데드>(2010), <월드워 Z>(2013) 등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전 지구적 재앙’이 된다. 특히 이러한 영화는 결말에서도 회복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며 희망 없는 종말론으로 귀결된다.

 

김형식은 종말론적 좀비에서 벗어난 ‘포스트 좀비’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뛰는 좀비 서사에서 좀비가 그저 세상을 멸망케 하는 요소라면 포스트 좀비 서사에서 좀비는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축이자 내재된 긍정적인 가능성을 표출한다. 포스트 좀비 서사는, 좀비가 억압당한 타자이자 소수라는 것을 부각하며 이들이 겪는 고통과 소외를 조명한다. <웜바디스>(2013)는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정동이 되는지, <매기>(2015)는 본능을 이기고 가족을 지키는 좀비 이야기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월가 점령 시위’는 좀비-되기의 수행성을 현실에서 보여준 예시이다. 좀비 시위대는 “은행원의 뇌가 맛있대”,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 등의 팻말을 들고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여기서 좀비는 자신의 신체를 무기로 구조를 전복할 가능성을 획득한다.

 

저자는 좀비를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존재, 주체로 해석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하였다. 193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 안에서 좀비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며 대중 문화적 관점에서 존재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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