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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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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X - 윤원화

2021.10.23

사이클로노피디아 사용법


박유진 (DCW 2021)

 

이번 10차 세미나에서는 시각문화연구자인 윤원화와 함께 『사이클로노피디아』를 중심으로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2021년 현재의 상황에서 이 책을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 보아야 하는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이클로노피디아』는 2000년대 중반에 중동의 철학자 레자 네가레스타니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편집한 책이다. 서류더미와 같은 형태로 출처가 불분명한 각주, 숫자, 다이어그램이 엮여 있는 이 책은 이론서의 패러디일 수도 있고 공포 소설일 수도 있으며 불확실성을 연료 삼아 허구를 소환하고 증폭한다. 책은 구멍이 나고, 쥐가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증발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노이즈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상태를 기본적인 이미지로 삼는다. 윤원화는 책이 백과사전을 갈가리 찢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빙글빙글 돌아가는 소용돌이의 백과사전이라고 소개하면서 한 마디 소개나 강독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언급했다. 어떤 위치에서 어떠한 목적으로 보냐에 따라서 내용이 다르게 구성된다. 

 

윤원화는 책을 번역하면서 한국의 맥락 내에서 소개하는 방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는데 첫 번째는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석유를 중심으로 인류세에서 언급하는 지정학적 문제와 교차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석유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지구는 파이프라인과 석유를 생산하는 지질대로 재구성된다. 한편 비인간을 주체로 삼는다는 태도는 포스트휴머니즘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구멍에 대한 감정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도나 해러웨이를 비롯한 포스트휴머니즘의 이론가들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흐리기와 비인간 되기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해석하는 반면 이 책에서 비인간이 된다는 것은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섬뜩함에 가깝다. 구멍은 혼종성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공포 소설로 이 책을 안내하는 것이다. 공포 소설은 스릴을 안전하게 즐기는 감각을 선사하는데, 『사이클로노피디아』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유사하게 고대의 강력한 존재와 죽음을 부른다. 악의 근원을 추동하는 힘은 저자의 ‘중동인’으로서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데 악의 축이라고 알려진 중동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 하는 존재는 언제나 악마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가짜 뉴스, 음모론들이 현실의 영역에서 쏟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현실과 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해 다투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그 사이에서 허구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윤원화가 일컫는 ‘만성적인 내전 상태’가 되어버린 현 상황에서, 인터넷 문화에서 10-20년 전에 쓰였던 사실과 허구를 뒤흔드는 방식이 현재에 어떤 식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질문은 유효하다. 

 

마지막으로는 책과 전시 사이의 단계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전시가 불완전성을 선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번역하고 편집하는 일은 기획자가 전시를 만드는 구성과는 다른 방향을 지니는데, 특히 기획자는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완전한 모험이 어려운 중간자의 역할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전시가 픽션을 수행할 수 있는지, 수행이 가능하다면 그 픽션은 전시장 안에서만 작동되는 것인지, 기획자는 어떠한 위치와 입장을 지니게 되는지에 대한 열린 질문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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