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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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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IX - 이한범

2021.10.16

미술 편집/출판의 특수성


홍예지 (DCW 2021)

 

1. 엔지니어링으로서 미술 편집


미술비평가이자 나선프레스 대표로 활동하는 이한범에게, 미술 편집 및 출판은 비평적 글쓰기에서 파생되는 실천으로, 비평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는 미술 편집을 일종의 “엔지니어링”으로 바라보는데, 미술에 관한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편집과 출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미술의 문제를 미술 안에서만 해결하기보다는, 미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와 그 특수성을 고려한 실천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미술에서 무엇을 문제로 간주하고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 각각 다른 접근이 가능하고, 그만큼 다양한 엔지니어링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세미나에서 ‘편집자’로서의 직업적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편집’이라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이끌고자 했다. 특히 ‘책’이라는 보편적 문화 구성물 안에서, 어떻게 미술이라는 분야의 특수성을 살리면서 편집을 해 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온 과정을 여러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공유했다. 

 

이한범은 『오큘로』라는 영상예술 비평지의 편집을 맡으면서 미술 출판을 시작했다. 당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예술 실천과 당대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것이 잡지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는 『오큘로』를 꾸려 나가면서 처음으로 ‘비평이란 무엇이며 예술 영역 안에서 비평의 위치는 어떤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평이라는 실천을 통해서 예술제도의 역동성을 느끼고 예술 현장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비평은 실제로 내가 바라보고 문제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실천으로, 대상을 총제적으로 감각하고 인식하면서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앎의 과정에 매력을 느끼면서 잡지를 비평적으로 기획하고 편집하는 활동은 내 눈앞에 놓인 미술을 다루고 대응하는 몸짓이자 그것에 다양하게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후 미디어버스에서 편집자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는 작가의 콘텐츠를 책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출판 편집은 책이라는 “사물의 삶을 설계하는 과정”으로서 제작 이후에 책이 유통 및 배포되는 과정까지도 포괄한다. 따라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책이 앞으로 어떤 경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물로서 책이 내 통제 밖을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는 비평적 인지 없이 편집을 했을 때 그 대상과 관련 없는, 관성적인 세팅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내가 다루려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식을 부여하고, 적절한 구성과 배치를 결정하는 활동은 비평적 관점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그는 무언가에 대해 이해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특수성을 조망할 수 있을 때 편집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해의 단계에서는 대상의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지만, 편집의 단계에서는 그 대상의 어떤 특정한 면을 재생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재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큐레이터와 편집자의 실천을 비교하면서, 큐레이터는 한시적이고 밀도 높은 공간을 설계하지만 편집자는 지면이라는 장소를 설계하고 책이 도달하는 바깥까지 설계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술을 책으로 만드는 경우, ‘작품/프로젝트/텍스트/전시/제도(미술관)’ 중에서 어떤 층위의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 것인지 구분하고, 각 경우에 따른 경로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나선프레스의 출판 사례


이어서 이한범은 나선프레스에서 출간한 책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편집을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각 프로젝트에서 관건이 되었던 점들을 공유했다. 박민하의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2020), 임영주의 『인간과 나』(2021)의 사례에서는, 최첨단 기술과학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이미지와 입체적인 글쓰기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위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각 작업이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고려하여 각각 ‘청소년 소설’과 ‘기술 비판서’로 분류하고 ISBN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각 책이 누구에게, 어떤 뉘앙스와 제스처로 다가가기를 바라는지 숙고하고, 이에 따라 능동적으로 편집 결정을 내린 사례다. 이외에도 『How to Move』(2020), 『유령의 집』(2019) 등 포트폴리오를 소개했고, 서울시립미술관과 헤적프레스와 협업했던 책들도 다루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미술 출판의 기존 관습에 대해 질문하고 실험하는 태도가 어떤 재밌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작품/전시의 맥락과는 또 다른 앎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큐레토리얼의 측면에서는 "책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작업이 다루는 "문제의식과 연결하는 것"으로서 미술 편집의 유용성을 검토할 수 있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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