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III - 안소현
<전시 공간의 의미: 뮤제오그래피 요소들의 역사와 의미적용>
4월 26일 안소현 독립 큐레이터와의 마지막 세미나가 “전시 공간의 의미: 뮤제오그래피 요소들의 역사와 의미적용”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미술관(박물관)내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고려되는 요소들인 ‘뮤제오그래피’에 대한 초기연구부터 오늘 날의 공간 연출사례에 이르기까지 전시 공간의 발전과 역사를 개괄적으로 공부해 보는 시간이었다.
미술관(박물관) 소장품의 전신(prototype)으로 지울리오 까밀로의 <기억극장>(1550)과 <스튜디올로>(Studiolo of Francesco I,1570-1572)가 제시되었다. 전자는 가상의 공간을 상정하고 그 공간에 배열될 주체들간의 상호적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나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배치”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등장시켰다. 한편 연구목적의 소장품을 배열하는 용도의 방이었던 <스튜디올로>는 메디치가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장식적인 공간이었다.
하나의 물리적 공간에 소우주를 담고자 시도된 경이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회화의 방(Cabinet of Paintings), 미니어쳐의 방(Cabinet of Miniatures) 역시 뮤제오그래피의 역사에서 예외 없이 다뤄진다. 마르셀 브로타에스 같은 근현대 작가들의 ‘수집’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들은 이 장(欌,Cabinet)의 형식에 영감을 받아 실현된 예다.
전시를 위해 선별된 소장품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전시에 있어 선택과 분류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전시도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며 선택에는 배제와 가치평가가 수반됨을 이야기 했다. 배열에 대한 고려는 객체의 의미와 연관되며 하나의 전시란 주체를 맥락화하는 것임을 인지하며 “선택”이 상대성을 띄고 있음을 정리했다.
안소현 큐레이터는 화이트 큐브 이전에 전시장에서 색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전시품이 독립적인 지위를 갖기 이전에는 다양한 전시 작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중립적이며 전체적인 배경설정이 필요했는데 이때 배경색으로 쓰인 것은 진홍이었다. 진홍은 홀로 움직이는 진동색으로 전체를 만드는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루브르에서는 초록을 벽면의 배경색으로 사용했는데 초록이 가진 차분함이 교육적으로 유용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괴테의 <색채론>은 색채가 주는 심리적 효과를 탁월하게 분석한 책으로 소개되었다.
19세기에는 보색이 주는 효과가 활발히 연구되었고 이후 작품의 주조색(그림의 주가 되는 색)과 보색을 이루는 배경색이 활용되기도 했다. 그 예로 피사로(Camille Pissaro) 같은 경우 벽을 본인 작업에 맞게 칠했으며 쇠라(Georges Pierre Seurat)의 경우 그림의 가장자리에 주조색의 보색을 칠해 프레임화 시켜놓기도 했다. 이렇게 개별 작품의 독자성이 강조되면서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제시방식이 존중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생존 작가들의 작품이 기존보다 널리 전시되기 시작했다. 안소현 큐레이터는 이를 “전시기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과 판단의 기준이 점차 작품 외적 기준에서부터 작품의 개별적 속성과 의미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모마의 초대 디렉터 알프레드 바 주니어가 정립한 ‘화이트 큐브’ 스타일은 기실 전시품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각적 장애를 소거한 시도 중 하나였는데 이후 전시공간의 국제적인 기준이자 규범이 되어버렸다. 모마의 화이트 큐브에 대한 찬반의견은 여러 학자에 의해 제기되었고 메리 앤 스테인제프스키(Mary Anne Staniszewski)와 레미 조그(Remy Zaugg) 등이 있으며 다다이스트들은 비중립적 전시공간을 구축하는 시도를 통해 규범과 제도의 무의미함을 다뤘다.
자료와 작품에 대한 구별이 없었던 하랄트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전시는 전시장이라는 문맥에 반기를 든 작가들이 스타 큐레이터의 지지를 받은 대표적 예다. 이를테면 “갤러리”를 무효화 시키고자 했던 일련의 미술가들- 마이클 하이저나 로렌스 와이너는 하랄트 제만의 큐레이토리얼 권력에 의해 작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강의는 니꼴라 부리오가 정립한 관계미학의 범주에서 저자와 큐레이터의 구분이 없어지는 무경계의 예도, 마이클 에셔 같은 개념 미술가들이 공간과 그 공간의 역사나 권위를 비트는 제도비판 미술 성격을 지닌 전시 역시 논했다.
전시장(공간)안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은 이제 통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효율성을 가늠 할 수도 있다. 인뎁스 계산을 통해 실제 관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통계는 작품별 가시성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움직임(참여자세)에 대한 결과가 달라짐을 입증했다. 관객은 예상할 수 없는 작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촉발하는 전시 배치에 의해 적극성을 달리한다. 관객 동선과 작품 배치와 시점, 벽과 색, 빛의 사용에 대한 다각적 판단은 전시장을 몰입(immersion)의 공간으로 만드는 구성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