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임
2016.04.12 ~ 2016.05.15Space111
화수목금 8시 / 토 3시 7시 / 일 4시
전석 30,000원
전석 비지정석
17세이상 관람가(고등학생 이상)
러닝타임 70분
전석 매진
문의 : 두산아트센터 02-708-5001

* [두산인문극장 2016: 모험] 연극 <게임> 전석 매진 되었습니다. 본 공연에 보내주신 깊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 공연 중 일부 장면에 욕설, 신체 노출, 성적 묘사, 흡연 장면이 있습니다.
임산부 및 노약자는 예매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 공연 특성상 시작 후 입장이 불가합니다.
<게임>은 영국 극작가 마이크 바틀렛(Mike Bartlett)의 최신작으로 *하우스 푸어의 극단적인 생존 게임을 소재로 한다. 2015년 2월 영국 초연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이는 <게임>은 <목란언니>의 연출가 전인철이 맡는다.
시놉시스
집 없는 부부, 애슐리와 칼리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가 제공하는 집에 들어간다. 멋진 가구, 아늑한 침실, 깨끗한 욕실을 갖춘 좋은 집. 단, 이 집에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비용을 내고 온 고객에게 그들의 생활을 공개하는 것.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게임에 참여하고, 부부의 사생활을 지켜보게 된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
일을 해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뜻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에서 파생된 용어.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출 이자 부담으로 빈곤하게 살거나, 월세 등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가리킨다. (두산백과 참고)
리뷰
생생하고 짜릿하다.
Vivid. Exhilarating.
-타임 아웃 Time Out, 2015 KO.
눈을 돌릴 수 없다.
A knockout. I couldn't look away.
-파이낸셜 타임스 Financial Times, 2015
짧고, 날카롭고, 숨을 가쁘게 한다. 탁월하다.
Short, sharp, pulse-quickening. Brilliant.
- 데일리 텔레그래프 Daily Telegraph,
작가/연출 소개
작가
마이크 바틀렛(Mike Bartlett) 극작가
연극 < Game >< Cock >< Chariots of Fire ><13>< Love Love Love > < Earthquakes in London >< Artefacts > 외
라디오/TV 드라마 < The Town >< The Core >< Heart >< Liam >< Love Contract > < The Family Man >< Not Talking > 외
수상
2010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 Cock >
2006 티니스우드 상, 리처드 이미슨 상 < Not Talking >
올드 빅 뉴스 보이스 상 < Artefacts >
연출
전인철
연출가/극단 돌파구 대표
연극 <고제><노란봉투><터미널><채상하나씨><목란언니><순우삼촌><시동라사> 외
수상 2015 한국연극협회 선정 ‘2015 공연 베스트 7’ <노란봉투>
2012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목란언니>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목란언니>
월간 한국연극 선정 ‘2012 공연 베스트 7’ <목란언니>
출연 유병훈 강말금 백성철 이지혜 전박찬 하지은 김민하 옥자연 윤미경 유동훈 김광현 백하민

다른 세상을 위해, 세상 속으로 떠나는 모험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그러니까 우리 문명은 개인의 사생활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보호해야 할 가치로 여기던 단계를 지나, 어느새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빤히 오락거리로 공개하고 열렬히 전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의 TV 오락물 제작사 엔데몰이 <빅브라더>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내놓았던 해가 1999년. 일반인 남녀 열 명이 한 집에 살면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들을 통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청자들에게 노출하고 매력을 평가받는 새로운 포맷이었다. 출연자들 간 치열한 생존경쟁과 엄청난 상금의 승자독식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흥미 요소도 빠지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첫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곧 세계 20여 개 국으로 진출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자기 복제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음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조금씩 잦아들고, 세기의 전환기를 맞는 기대와 불안이 어지럽게 교차하던 때였다.
<빅브라더>는 당연히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을 환기시키려는 작명이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정확히 반세기 전 오웰이 상상한 근미래의 풍경을 거실 안에서 실감나게 재현한다는 데 있지 않았다. 소설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온 사방의 텔레스크린이 자신의 일거일동을 촬영하고 전송하는 현실을 두려워한다. 그는 감시가 언제, 얼마나 자주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감시 내용이 ‘사상경찰들’에게, 궁극적으로는 ‘빅브라더’에게 보고된다는 것을 알 뿐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빅브라더>는 제목 뒤로 소설과의 중요한 차이점들을 감춰버렸다. 오웰의 세계에서는 단 한 명의 빅브라더가 정치적인 통제와 지배를 위해 모든 인민을 감시한다. 정작 <빅브라더>에 없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빅브라더의 존재다. 엔데몰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저 재미를 위해 남의 은밀한 삶을 시청한다. 이 ‘스몰브라더’들의 군집으로 빚어진 빅브라더는 시청률이라는 숫자로 추상화되고 다시 광고 수입이라는 형태로 환금된다. 엔데몰은 그러한 새로운 빅브라더를 위해 도발적인 감시체제를 생산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빅브라더>는 오웰의 소설을 빗나간 예언처럼 보이게 만든다. 모두가 모두를 쉽게 감시할 수 있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은 컴퓨터를, 인터넷을, 카메라를, 전화를 그리고 텔레비전을 몰라볼 만큼 바꿔놓는 중이었고, 그 산업의 성장과 시장의 확장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용히 뒤흔들고 있었다. 어느새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었지만, 일개 TV 프로그램 따위가 새 시대의 알람 노릇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마 Y2K 같은 헛소동이 너무 시끌벅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의 감각이 과거 속에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문명의 발전이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누구나 타자의 삶을 일상적인 구경거리로서 욕망하고 미디어를 통해 소비할 수 있는 지경으로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구경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을까? 응시의 대상을 기술적으로 실재에 최대한 가깝게 모사하는 정도(예컨대, 3D VR)를넘어서 아무런 미디어의 매개 없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공간 안에 투입할 수도 있을까? 이윤추구를 향한 자본가들의 끝없는 경쟁이 혹시 그러한 ‘신사업’의 ‘블루오션’을 창출해내지는 않을까?
극작가 마이크 바틀렛의 <게임>은 집을 얻는 대가로 자신들의 사생활을 남들에게 드러내게 된 어떤 젊은 부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 노출과 관음의 게임은 사실 우리에게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오락거리이기도 하다. 마이크 바틀렛의 작품에서 새로운 점은 응시 대상인 젊은 부부와 관람객들 사이의 거리가 사라져 버린다는 설정이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재현된 화면 속의 부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생활 현장을 둘러보며 직접 경험한다. 실감 체험의 절정에는 부부에게 마취총을 쏘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냥 기회가 있다.
문명의 발전은 특별한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목적성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다양한 가능성들의 장 위에서 ‘피어나고 펼쳐질’ 따름이다. 그러니 그것이 설령 퇴행적으로 보이는 과거의 요소들을 최신의 테크놀로지들과 결합시킨다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 브랫 베일리가 를 통해 강력히 일깨워준 서구의 야만을 떠올려 보라. ‘계몽된’ 유럽인들이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우리에 가두어 넣고 ‘인간 동물원’을 꾸며 전시했던 시절이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확실히 시차가 가져온 변화 또한 존재한다. ‘인간 동물원’의 경우에는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대립 구도가 그들의 피부색만큼이나 분명했으며,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이념에 따른 선악의 가치판단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억압자와 피억압자 간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구분과 평가는 골치 아파졌다. 바틀렛의 작품에서 구경과 사냥의 대상은 더 이상 흑인이나 원주민이 아니다. 가난하고 집 없는 젊은 부부는 삶의 물질적 안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한다. 10대 소녀든 선생님이든 별다른 가책 없이 구경꾼과 사냥꾼의 역할을 즐긴다. 자신이 지불한 요금만큼의 짜릿한 경험을 구매할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계급 격차만이 진정한 문제라는 말일까?
<게임>에서 제일 흥미로운 대목은 게임을 고안하고 부부에게 제안했던 사업가가 몇 년 뒤 파산한다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를 예리하게 간파한 이 혁신적 기업가는 ‘극단 체험’을 순발력 있게 상품화했지만, 새로운 시장에 마구잡이로 뛰어든 경쟁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 결국 몰락하고 만다. 그는 기이한 게임을 개발하고 주도했지만, 더욱 거대한 경제적 게임의 최종 승자는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온통 소진시킨 끝에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보자면, 마이크 바틀렛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미래로부터 온 난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연한 빈곤과 주거 불안 속에 치열한 경쟁과 쉼 없는 노동,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점점 더 자극적인 문화상품들에 매달리게 되는 파국적 미래. 그런데 이 막막한 미래는 과연 우리의 숙명인 것일까?
극중에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게임을 모두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부부의 아파트를 지키며 입장객들의 관람과 사냥을 안내하는 관리인이다. 게임의 안에도 바깥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그의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방관에서 연민으로, 공감으로, 다시 성찰로 차츰차츰 변화해간다. 그는 마침내 게임이 끝나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집 안의 박스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부부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평생, 계속, 쭉 힘들 거야.
그래도? 선택은 해야지.
그 안에서 나와서 바깥 세상이랑 맞서거나.
아니면 평생 그 안에 있거나.
둘 중 하나야. 리암. 넌 어떻게 하고 싶니?
리암? 너 어떻게 할래?
거기 있을래? 아님 나올래?
아저씨 아직 여기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큰 모험은 어쩌면 다른 세상을 꿈꾸며 지금의 세상과 맞서는 일, 그러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게임>은 우리에게 그러한 모험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은 평생 자신이 속아서 갇혀 살았던 리얼리티 쇼의 세트장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바다로 향한다. 거짓이었지만 행복했던 무대에서의 삶이나 익사 사고의 트라우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렇다.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야 한다.
* 공연장 내에서는 휴대폰 전원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 공연 시작 후에는 객석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지정 좌석에서 관람하여 주시고 공연 중 좌석 이동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공연장 내에서는 꽃다발 증정, 사진 및 비디오 촬영,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 예매티켓 수령 및 현장구매는 공연 1시간 전부터 가능합니다.
공연일 10일전까지 전액 환급
공연 3일전까지는 예매 후 24시간 이내 취소 시 전액 환급
공연일 9일전~1일 전까지 10% 공제 후 환급
예매 후 8일부터 공연 1일 전까지 : 10% 공제 후 환급
공연당일 공연시작 전까지 90% 공제 후 환급
단, 예매 후 7일 이내라도 취소시점이 공연일로 부터 10일 이내면 10% 공제 후 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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