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전경
사진: 최연근
오늘날의 세계는 때로 지독한 농담처럼 느껴질 만큼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들로 가득하다. 전시 《HUMORS(후모어스)》 는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예술가들이 어떤 언어와 감각으로 동시대를 읽고 응답하는지를 살펴본다. 이 전시에서 말하는 ‘HUMORS’[1]는 단순한 농담이나 가벼운 유희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겁고 복잡한 현실을 끝까지 응시한 끝에 형성되는 전복적 감각이자 현실을 다시 읽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전시는 사회적·환경적·정치적 난제를 풍자나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하기보다 서로 다른 요소를 엮고 이질적인 관계를 새롭게 배열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의미 체계를 흔드는 사유의 방식에 주목한다. 여기서 유머는 현실을 가볍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비판적 감각이자 창조적 전략으로 기능한다. 전시 제목을 복수형인 《HUMORS》 로 설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는 하나의 단일한 태도가 아니라 여러 예술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는 다층적인 실천과 방법을 가리킨다.
김아영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서사로 이어지며 현실을 전복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끝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최근 작업과 달리 〈어느 도시 이야기〉(2010), 〈이페메랄 이페메라〉(2007-2009)와 같은 초기 작업은 실제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과 작가의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다. 이번 전시의 〈알 마터 플롯 1991〉(2025)은 작가의 초기 태도와 그간 축적된 상상력이 개인적 기억과 맞물리며 재구성된 작업이다. 작품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알 마터 주택단지를 배경으로 걸프전 시기의 역사와 가족의 경험을 교차시킨다. 한국 건설사에 의해 조성된 이 공간은 쿠웨이트 난민들의 임시 거주지였으며, 동시에 작가 아버지의 체류 경험과도 연결된다. 영상, 3D 시뮬레이션, 지도, 인터뷰, 아카이브가 중첩되면서 하나의 선형적 이야기 대신 여러 시간과 기억이 얽힌 장면이 형성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복잡한 역사적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다른 층위로 비틀어 제시하며,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을 낯설게 만든다. 이러한 접근은 현실을 가볍게 넘기는 태도라기보다 복잡한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끝까지 밀고 들어간 끝에 드러나는 균열에 가깝다.
방정아의 회화는 일상적인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그 안에서 현재의 세계를 다른 각도로 비춘다. 그는 지역의 생태와 동식물권,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은 작가를 스튜디오 밖의 실제 행동과 참여로 이끈다. 그 결과 그의 회화는 환경이나 정치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연함을 유지한다. 연민이나 부채감에 머무르기보다 유머와 거리감을 통해 이를 풀어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 〈소나기〉(2026)는 물속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을 통해 서로 다른 상태의 존재를 드러낸다. 일부 인물은 이미 평온에 도달한 듯 보이는 반면, 다른 인물은 간신히 숨을 이어간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의 상태를 가리킨다. 〈군중 헤엄〉(2017), 〈생각을 말어야지〉(2015)로 이어지는 작업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을 탐색해온 작가의 태도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무니페리는 의례와 서사를 통해 공동체의 기억과 사회 구조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존재하지만 쉽게 포착되지 않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시 참여작 〈Missing〉(2024)은 ‘사라짐’이라는 상태를 따라가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대만 지역의 민간 신앙과 유령 서사,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제도적 시스템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어떻게 기억되고 망각되는지를 질문한다. 단순한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실종을 둘러싼 감정적·정치적 층위를 함께 드러내며 개인의 상실 경험이 집단적 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Missing〉은 ‘찾을 수 없음’을 고정된 결말로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야기의 장으로 풀어낸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조사와 인터뷰, 신화적 서사와 개인적 경험이 중첩되면서, 무엇이 왜 사라졌는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상실 이후의 감각과 기억, 정체성의 흔들림을 드러낸다. 이 작업은 ‘실종’을 결핍이 아닌 또 다른 생성의 조건으로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것과 남겨진 것 사이에서 새로운 서사와 감각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The Institute of Queer Ecology는 인간 중심적 질서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다른 방식의 삶을 제안하는 콜렉티브이다. 리 피브닉과 니콜라스 베어드가 공동 운영하며, 퀴어 이론과 생태학, 디지털 미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정체성’을 고정된 개념이 아닌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의 협업과 프로젝트를 아카이브 형태로 조망하는 한편, 〈Metamorphosis〉(2020)를 통해 이들의 태도와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 Common Survival〉(2018)은 인간 중심의 생존 개념을 넘어 다양한 종과 존재가 얽혀 공존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생존을 경쟁이나 적응이 아닌 관계와 상호 의존의 과정으로 재정의하며,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디지털 존재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온라인 플랫폼과 가상 환경을 통해 참여자들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성된 점 또한 이러한 관점을 구체화한다.
[1]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김남주 옮김, 그책, 2014), 120–141쪽. 슈만의 피아노 곡에서 지시어로 사용된 ‘Humor’를 전시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여기서 ‘후모어’는 어떤 상태를 그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채색하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외적인 것(유머)과 가장 내밀한 것(기분)이 뒤섞이는 상반된 요소들의 통합을 가리킨다.
* 두산갤러리는 2025년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DCW) 15주년을 맞아 지난 DCW 참여자(2011-2022)를 대상으로 공모하여 ‘DCW 공모 기획전’을 새롭게 시작한다. 이를 통해 DCW에 함께 했던 큐레이터들의 큐레토리얼 실험과 실천을 두산갤러리에서 다시 한번 공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