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작가 차연서 허지은(Gi (Ginny) Huo)
전시 전경
사진: 이의록
관람시간: 화수목금토 11:00~19:00 / 일, 월 휴관
장소: 두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종로33길 15 두산아트센터 1층
무료관람 / 문의: 02-708-5050
《sent in spun found》는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로 보내지거나, 역으로 보내는 연쇄적 흐름에서 남겨지고 발견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차연서와 허지은(Gi (Ginny) Huo)은 각자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가족, 종교, 사회적 현상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정동을 독자적인 태도와 시각 언어로 이야기한다. 두 작가의 서사는 직접적으로 교차하지 않지만, 이들의 작업은 ‘특정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경계의 횡단’, 혹은 이를 향한 거듭되는 고리에 기인한다. 허지은의 작업은 더 나은 삶과 종교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한 가족사로부터 비롯되며, 차연서의 작업은 아버지가 남긴 것을 재료 삼아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존재의 비통함을 위로하고 보살핀다. 두 작가는 각자의 유산을 곱씹고, 새롭게 이해하고 공유함으로써, 주변화된 이야기와 존재를 회복시키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로서의 극진한 친밀감과 타자로서의 성근 거리감이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전시장 외부 윈도우 갤러리에 자리한 허지은의 〈라이에로 가는 길〉(2025)은 전시의 입구이자 출구의 역할을 한다. 차를 타고 구불거리는 도로를 이동하며 바라본 듯한 짙은 녹음의 풍경은 마치 렉(lag)이 걸린 화면처럼 도중에 끊기거나 중첩된 채 이어진다. 그 장면 사이로는 작가가 20년 만에 고향 하와이 라이에(Lā'ie)를 찾아가며 기록한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허지은은 자신의 성장 배경인 몰몬교(Mormonism)를 근간으로, 종교 체계의 유산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섬’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 ‘인슐라(insula)’에서 파생된 단어 혹은 개념인 고립/격리(isolation), 보호(protection), 인슐린(insulin–설탕과 연계된)을 서로 엮어낸다. 그의 가족이 거주했던 라이에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19세기 후반몰몬교는이 지역의 수백만 평 부지를 매입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했다. 그후 이 땅은브리검영대학교(BrighamYoungUniversity)의 하와이 캠퍼스와라이에성전이 위치한 관광지로 변용된다. 이는 “이 땅을 성전(gathering place)으로 삼으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다른 사상의 배제와 그로부터의 격리를 수반하며, 결과적으로 고립 속에서 권력을 구축해 왔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믿음은 종교뿐 아니라 군대와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하며, 단체 행동을 각자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도록 몰고 감으로써 개인의 윤리적 선택과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허지은은 이러한 문제를 토지, 노동, 점유의 개념으로 확장하며 산업적 소재를 끌어와 시각화한다. 무게감 있는 고무밴드가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설치 작업은 대량 생산과 유통의 주요 설비인 컨베이어 벨트를 은유하고, 뒤엉킨 전선을 이용한 작업은 한국의 할머니 집 창문에서 바라본 전신주와 전화선을 참조하고 있다. 나아가 그가 제시하는 프레임과 형태는 관객에게 거시적, 미시적 관점을 동시적으로 허용한다. 라이에 사탕수수 농장의 아카이브 이미지를 작고 섬세한 드로잉으로 옮겨오거나, 미국 유타(Utah) 부모님의 집 외벽 단열재(insulation)를 초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통해 시점을 뒤섞으며,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의 모호한 흔적을 드러낸다.
차연서는 몸과 연결된 삶 그리고 끊어진 삶의 주변을 맴돌며, 다시 연결하고 돌본다. 특히 그가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닥종이 작업은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후 남겨진 닥종이 무더기를 처리하려는 방도로 시작되었다. 짙고 깊은 색으로 채색된 닥종이를 가위로 오려 유기된 몸을 그려가는 연작 〈축제〉(2023–)의 창작 과정은 일종의 천도재(薦度齋, 죽은 이를 위한 불교 의식으로, 물과 육지를 헤매는 모든 중생을 위한 의례인 수륙재(水陸齋)를 망라함)와 닮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은 차연서가 경험한 죽음과 상실, 반복적으로 응시하는 이미지 속 죽음들—무주고혼(無主孤魂)과 소외된 모든 존재—을 기린다. 그에게 떠넘겨지듯 남겨진 아버지의 종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오려지고 직조되어, 서로의 꼬리를 물어 다시 시작되는 다채로운 색의 뱀으로 변모한다. 영원이 끝나지 않는 ‘순환하는’ 원이 만들어내는 환영은 정처 없이 죽어 흩어진 몸들의 비통함을 승화시킴과 동시에 〈저 고양이들! (아홉 목숨, 부활하신 어머니)〉(2025)의 무대가 된다. 김언희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시를 참조하고 각색하여 쓰여진 퍼포먼스의 서사와 구성은 서로 엮인 종이들이 만들어내는 패턴과 상응하고, 관능적이며 야만적인, 들끓고 가라앉는 파괴와 부활의 순환을 말하는 시의 구절들을 인용한다. 이로써 전시장은 부서진 존재들이 다시 태어나고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장소가 된다. 한편, 차연서는 녹으로 얼룩진 흰 가면을 허공에 매달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몸들이 그 자체로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고, 낡은 손대패를 지지체로 삼아 만든 ‘혀 조각’과 그에 얽혀 있는 핥기, 씻기, 대패질하여 다듬는 행위를 통해 초대의 제스처를 확장한다. 그리하여 작가, 퍼포머, 관객을 막론하고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몸들의 등장을 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 6시. 전시장의 빛이 바뀌고 색이 사라진다. 차연서의 영상 속 비평가 양효실의 낭독은 또 다른 작가 아글라야 베테라니(Aglaja Veteranyi)의 글을 불러낸다. 《sent in spun found》는 시각 정보의 상실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관람객을 이미 익숙해진 지각 방식을 재조정해야 하는 순간에 처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의 인식 통로가 닫히면 다른 통로가 열린다. 이를 통해 관객은 경험의 또 다른 층위로 건너가게 된다. 이는 한때 허지은의 가족이 속하고자 했던 곳이자 그가 태어난 곳, 오늘의 허지은과 차연서가 경계 사이에서 진동하며 이해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와 닮아 있다. 이미지와 물질의 윤곽만 드러나는 빛 속에서 전시장의 모든 존재들은 조금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동한다. 그 움직임은 우리에게 보내지고 남겨진 것들, 건너가고 다시 모이는 일, 그리고 허지은과 차연서가 해체하고, 잇고, 다시 살피려는 노력이 향하는 곳을 비춘다.
– 장혜정, 루미 탄(Lumi Tan)
공동기획: 장혜정(두산아트센터), 루미 탄 │ 진행 보조: 강하람, 유진영, 이예인, 이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