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111

비포 애프터

2015.10.23 ~ 2015.11.07

화수목금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 10월 28일(수) 문화가 있는 날
3시 8시 (2회 공연)

전석 30,000원

만 13세이상

러닝타임 100분

전석 매진

두산아트센터 02-708-5001

프로그램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지원아티스트
이경성



공연 예매 확인ㆍ취소 >>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예매에 한함

*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연극 <비포 애프터> 전석 매진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공연은 작품의 특성 상 객석이 무대 위 화면에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참고 부탁 드립니다.

 

이경성은 동시대의 이슈를 연극에 담아내는 연출가이다. 2010년에 도시 공간의 의미를 담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로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어 2014년에는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번 작품 <비포 애프터 Before After>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 일상의 기억과 경험을 소재로 우리 삶과 사건의 관계를 살펴보는 연극이다.

 

공연소개
비포 애프터(Before After)라는 시간적 구분은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두고 그 전과 후에 달라진 변화를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통해서도 비포 애프터가 만들어지는데, 그 거대한 사건이 ‘나’의 삶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연극 <비포 애프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서서히 목도한 성수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부채감을 느꼈던 채군, 눈이 거의 실명될 정도의 국가적 폭력을 경험한 후 무기력증에 빠졌던 장성익, 2014년 4월 16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있었던 김다흰과 자신의 일기를 방송하는 나경민, 국가를 연기하는 장수진. 이들 각자가 가진 비포와 애프터의 시간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축이 되어버린 ‘사건’과 맞물려 연극을 구성한다. 극장 비상탈출 매뉴얼, 랩, 걸그룹 댄스, 뉴스, 실시간 영상 등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무대 위 ‘나’의 시간은 어느새 무대 너머 ‘너’의 공간과 만나게 된다. 

 

작/구성/연출 소개
이경성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
연출가,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 아트 프론티어 2기 작가
제3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수상
2014 한국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3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
2014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
2010 제47회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
2009 춘천마임축제 도깨비어워드<더 드림 오브 산쵸>

 

작품
연극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연극의 연습-인물 편><서울연습-모델, 하우스>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틈><대학로 쩜><움직이는 전시회><더 드림 오브 산쵸> 등
 

 

작/배우 소개
장성익
연극 <괴물><로미오와 줄리엣><여기가 집이다><봄이 사라진 계절>

<푸르른 날에><풍찬노숙><보이체크><봄날><미친극> 외

나경민
연극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서울연습-모델, 하우스><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

<그와 그녀의 목요일><아타미 살인사건> 외

장수진
연극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

<서울연습-모델, 하우스><프랑스 정원><위대한 캣츠비 Season1><하녀들> 외
2012 문학과지성사 계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수상

성수연
연극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연극의 연습-인물 편>

<서울연습-모델, 하우스><한꺼번에 두 주인을><대학로 쩜><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외

채군
어쿠스틱 듀오 ‘자일삐(Xylbbi)’ 멤버

연극 <누군가는 듣고 있어><마지막날> 외

김다흰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사춘기>

연극 <인사이드 히말라야><터키블루스><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인디아 블로그 시즌2> 외

 

 

기획: 두산아트센터
제작: 두산아트센터,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
작/구성/연출: 이경성
작/출연: 장성익, 나경민, 장수진, 성수연, 채군, 김다흰
드라마터그: 전강희

조연출/아카이빙: 현예솔

무대디자인: 신승렬

무대감독: 서수현
조명디자인: 고혁준
사운드디자인: Kayip
보이스코치: 최정선
영상디자인: VISUALS FROM.
움직임지도: 이소영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은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 선정하여 신작 창작 및 워크숍, 해외 리서치 등의 창작활동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 아티스트 : 양손프로젝트, 이경성(연출), 양태석(드럼아티스트), 김은성(작가), 여신동(무대디자이너)

                    성기웅(작가/연출), 이자람(국악창작자), 서재형(연출), 한아름(작가)

 

현실과 픽션   

- 주일우(문학과지성사 대표)

 

우리의 상상력은 현실적인 조건들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흔히 벌어지는 꿈조차도 대부분 현실의 조각들이 모자이크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현실의 구속력이 크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연극, 영화 그리고 미술이나 음악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예술가들은 현실을 베끼기보다는 꾸준히 픽션(fiction)을 만든다. ‘형성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픽티오(fictio)에서 온 픽션은 꾸며내거나 상상력에 의존해 만든 이야기라는 뜻이다. 예술가들은 왜 픽션을 만들까

 

그것이 언어든, 움직임이든, 소리든, 영상이든, 인간이 예술에 동원하는 도구들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한 마리의 개미가 되었든, 우주가 되었든, 일단 인식의 대상이 되면 그것을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학적으로,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모든 관찰과 측정에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관측 대상의 위치와 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 그 크기가 작든 크든 전체에 대한 형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형상화하려는 대상과 동일한 크기의 텍스트는 결국 무한한 크기의 텍스트를 의미한다. 그런 텍스트는 만들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상징이나 알레고리와 같은 장치들을 동원해서, 부분적인 픽션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작업뿐이다. 인식의 범주 안에서 질서를 만들고 읽을 수 있는 대상으로 축소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픽션을 만드는 작업이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꾸미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털어놓거나 사건을 형상화하기보다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논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경향의 작품들을 묶기도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애매하다. 아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으로 글로 만들거나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독자나 관객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보는 것은 구성된 픽션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좀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의지하고 있는 큰 틀조차도 하나의 픽션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우주론은 픽션의 완벽한 사례이다. 고대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픽션에 의지해 살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달이 지구를 도는 궤도를 경계로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뉜다. 세상의 물체는 물, 불, 흙, 공기라는 4원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소의 혼합 비율에 따라 우주의 중심이나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로 움직인다. 천상계의 별들은 제5원소로 이루어져있고 완벽한 원운동만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믿고 있는 우주론도 과학에 입각한 사실들의 체계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약간 거칠게 정리하면 이런 정도의 픽션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태초에 한 점에서 빅뱅이 있었고, 그때부터 시간이 흐르고 우주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 빅뱅 때 생긴 작은 입자들이 원자를 만들고 원자들이 다시 분자나 고분자를 형성한다. 우주가 식어가면서 뭉친 입자들이 별도 만들고 행성도 만들고, 그들이 서로 간에 작용하는 힘에 따라 궤도를 이루어 돌고 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변방의 작은 행성이다. 우리는 픽션에 의지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그 픽션이 바뀌기는 하지만.

 

예술가가 태생적으로 픽션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작품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고 주장할 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의심한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규모와 파장에 압도당해서 다시 이야기를 꾸밀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압도적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고 그 앞에서 불과 몇 초 후에는 휩쓸려 버릴 상황에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저 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 혹은 지구에 충돌하는 다른 천체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데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꾸미는 예술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살아남아 예술을 통해 증언하려는 이가 압도적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가 만든 작품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황을 돌파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픽션을 포기했다 이야기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라면 예술의 이름으로 작업을 할 자격이 없다.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품들을 적지 않게 본다.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에 원론적인 이야기를 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새로움이나 기발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동시대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예술가들은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빨리, 더 깊게 느끼고, 작품을 통해서 더 넓고, 더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 믿는다. 그 울림이 공명해서 탈출할 구멍이 없는 세상에 구멍을 더 많이 만들기도 하고,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구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위대한 탈출’ 이후에 탈출자 대부분이 다시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운 좋은 몇몇이 탈출하고 난 이후에 탈출의 길이 막히게 된다고 하더라도, 해방의 길은 시대를 감각하고 증폭하는 예술가들의 반복적인 움직임 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비포 애프터>에 거는 기대는 이경성과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가 전작들에서도 보여 주었듯이 감각과 증폭의 사이클을 돌릴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건이 사건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혀 다른 맥락 속에 놓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증폭되어 나갈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더 나아가 그 울림의 끝에 서 있는 관객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 삶을 바꾸어 갈 것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공간과 시간의 ‘틈’에 대해 말하기 - 이경성의 연극연습   

- 이경미(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재현을 넘어 스스로에게 건 내기
이경성, 그는 ‘연극’을 ‘연습’하는 연출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연습했고(<서울연습-모델, 하우스>(2013)), 인물에 대해 연습했고(<연극의 연습-인물 편>(2013)), 또 극장에 대해 연습했다(<남산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2014)). 물론 이때 그의 연극 연습은 어떤 이상적 모델을 설정하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색하고 시도하고, 질문하며 두드리는 행위다. 즉 그가 하는 연극의 연습들은 연극의 지형이 과연 어디까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가를 놓고 자신에게 거는 일종의 내기 같은 것이다.  
예술가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이경성 역시 자기 앞에 놓여있는 사실이나 사물에서 소위 ‘진짜’라고 하는 것들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이 한번 훑고 지나가는 세상의 대상과 사실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 거기에 또 질문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연출가로서, 확장적인 해석의 입장에서건, 전복과 해체의 입장에서건, 희곡작가가 무대를 향해 내민 희곡의 서사를 가져와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희곡이, 작가의 언어가 무대에서 세상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방식인 것은 분명 맞지만, 그는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희곡을 재현하는 대신 ‘공간’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이경성은 자신의 작가적 세계관과 예술적 상상력을 쉽게 덧대지 않는다. 굳이 말한다면 비로소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일종의 ‘터’를 만든다고 할까. 그의 작업이 늘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동료들과 함께 일상 속에 존재하는 여러 자료들을 조사하고 수집하는 공동작업에서 출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허구가 실재보다 더 실재같이 되어버려 어느 작가의 언어도 감당해낼 수 없는 이 극단적인 시뮬라크르의 시대에서, 사실의 흔적을 찾아 이것을 연극의 이름으로 관객의 의식 속에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연극은 하나의 조심스런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는 연극을 주장하고 설명하고 계몽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비로소 말하게 하고 보이게 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한다. VaQi의 배우들이 인물을 입고 재현하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 앞에 하나의 사실을 제시하는 자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상황과 인물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감정적인 살을 덧붙여 강하게 부각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인 보고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들이 조사하고 구성한 자료들을 근거로 관객을 향해 질문을 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답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관객이 그들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끔 하기 위함이다.       

 

공간과 시간에 작동하는 힘들을 현시하기  
광화문 광장 한 복판에서 왠 여자 하나가 3인용 소파를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다가 아무 곳에 내려놓고 앉아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묘한 분위기의 여자들도 보인다. 잠옷차림의 남자는 이불에 가스버너, 인형과 컵라면 등 조잡한 살림살이로 채워진 작은 돗자리를 어깨에 매고 끌고 다닌다(<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 4년 후, 이경성은 이 광화문에서 또 한번의 연극연습을 했다. 본인 자신을 비롯해 여러 계층, 다양한 직업의 일반인 24명이 릴레이로 참여, 한 시간씩 저마다의 방식으로 광장에 서서 자신을 드러냈다. 그들 중 누구는 노래했고, 누구는 앉아서 한자책을 읽었고, 누구는 춤을 추고 또 누구는 그저 가만히 서있거나 반복적인 움직임을 되풀이했다(<나의 시대에 고함>(2014)).
이경성의 연극연습의 대부분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적 공간에다 유형, 무형의 낯선 움직임들을 삽입한다. 이것은 그가 공간을 그저 이미 주어져 있는 어떤 물리적 지형이나 어떤 사건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 권력과 제도, 무엇보다 자본과 같이 다양한 힘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성되고 변형되며 또 소멸하는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공간은 곧 한 시대, 한 사회의 정체, 경제 문화적 지형의 집약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은 서울역 KTX 건물 한 켠으로 밀려난 옛 역사(驛舍), 즉 문화역 서울에 ‘틈’을 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프로젝트 틈>(2013)). 주지하다시피 이곳은 서구문물과 제국주의, 식민과 전쟁, 산업화와 경제발전 등, 규칙적이고 통합적인 위계적 힘들이 작동했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바바리 코트에 분홍색 하이힐을 신은 여배우는 아바타와 같은 몸짓과 음성으로 우산과 서울역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은 소재로 세 개의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해 들려준다. 다른 배우는 전시장 다른 한쪽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점을 봐준다며 앉아있다. 누구는 커다란 화분을 든 노숙자의 모습으로 공간을 배회하고, 누구는 긴 여행 중인 듯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전시장 안의 전시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번의 광화문 공연에서도 그랬지만, 이 움직임들은 대개가 별다른 연극적 약속 없이 이뤄지는지라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 눈길을 보내고 그것을 일상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주목하는 순간,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이곳을 감싸고 있는 유형, 무형의 흐름들이 이완되거나 중지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문화역사 밖 도시의 일상, 역사, 규범 등, 우리의 현재는 본래 이렇게 불연속적이고 사소한 흐름들이 단 하나의 담론으로 통분되어 매끈하게 다듬어진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미 본래의 기능을 잃고 문화적 장소로서 하나의 헤테로토피아가 되어버린 이 공간에서, 이경성은 근대의 산업발전이라는 거대담론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헤테로토피아들를 추적한다.  
그러나 이경성이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는 힘들의 지형을 읽으면서도 가장 주목하는 것은, 힘과 힘들이 충돌하며 부정적인 파장을 일으키는 어떤 지점들이다. 즉 하나의 힘이 다른 힘들을 과하게 압도하고 억압하면서 발생하는 폭력과 기형의 흔적 말이다. 여러 힘들 중 어느 하나가 무리하게 작동될 때, 그것은 공간과 시간을 엄청나게 왜곡하고 변형시킨다. 역사 속의 모든 폭력과 야만은 바로 하나의 공간, 하나의 시간 속에 개입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힘들 때문이었다. 남산예술센터라는 극장에 대한 연극을 연습했을 때, 이경성은 이 극장이 위치한 남산이 일제강점기, 그리고 유신독재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을 점유했던 힘들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남산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2014)). 그리고 극장이 만들어진 이후 이 극장공간을 점유했던 보이지 않는 힘들은 극장 밖의 남산, 결국 한국 사회를 점거했던 힘들의 연장이지 않았겠느냐고 묻는다. 그 힘들이 예술을, 연극을 어떻게 왜곡하고 변형시켰는가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공간과 시간의 일상적 틀을 해체하고 낯선 시선을 주입하는 가운데, 이경성의 연출미학은 동시대적 의미에서의 정치성을 확보한다.  


공간과 시간 위의 몸, 우리의 현존이라는 것에 대해  
이경성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읽고, 시간 속에서 공간을 읽는다. 정확히 말해 공간의 시간성, 시간의 공간성에 주목하고 그 안에서 작동되는 힘들의 지형을 읽는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힘들을 읽는 일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현존에 대해 되묻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이경성의 연극연습에 등장하는 배우의 몸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가져오기도 하고, 일상 속의 여러 자료들을 조사해 수집해서 가져오기도 하면서 그들의 몸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낯선 여러 흐름들을 삽입한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안의 우리의 현존에 대해 묻고 다시 구축한다. 그의 연극연습에서는 VaQi의 배우들의 몸 뿐 아니라 일반인의 몸도 이 역할을 수행한다.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2014)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이애순 할머니의 몸은 70여년에 걸친 그녀의 개인적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고단했던 연대기는 그녀가 거쳤던 한국의 현대사의 흔적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할머니의 몸은 곧 우리의 현대사의 몸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의 몸이 거주하는 작은 일상의 공간은 동시에 그 시간 동안의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의 공간이기도 하다. 70여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의 현존은 그렇게 구성되어 왔다. 어쩌면 만들어졌는지도. 할머니가 무대를 빙 둘러 한참 쓸고 닦는 것은 그녀의 몸이 다시 쓰는 우리의 역사다. 작고 왜소한 그녀의 몸은 그렇게 역사라는 무대를 닦고 쓸면서 지금 여기에 ‘있다’. 이경성은 이 할머니의 일상공간 속으로 VaQi의 다른 세 명의 배우와 함께 합류해서 배우들로 하여금 할머니의 서사를 함께 공유하고 경우에 따라 역할을 대신 받아 수행한다. 작은 공간에서 할머니들과 배우들이 함께 지어 먹는 밥, 그것은 할머니의 몸과 그 몸에 담긴 과거의 서사가 배우들의 몸, 그리고 그들의 현재와 서로 통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은유다.   

 

다시 연극연습
이경성은 이번 <비포 애프터>에서는 보다 시간에 주목한다. 정확히 말해 지금 우리 모두의 의식의 공간을 차지한 시간, 특히 시간에 개입하는 여러 힘들에 주목한다. 그 힘들이 한 사건의 전과 후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가가 이번 그의 연극연습의 화두다. 아마도 배우들은 기억과 애도, 망각과 억압 등 다양한 리듬들을 그 위로 출렁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짐작컨대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서로 무관한 듯한 여러 분절되고 이완된 시간의 마디들을 쫓아가면서, 관객은 그것이 또한 우리의 시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비포/애프터라는 그 분절의 마디로 인해 가슴을 앓고 있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우리 모두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모두의 기억의 공간과 시간에 개입한 그 부정적 힘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그 힘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비포/애프터라는 이 원하지 않았던 분절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아직 오지 않은 우리 앞의 저 시간들을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 이경성의 질문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그의 연극연습은 여기에서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답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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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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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우 전화 예매만 가능. 두산아트센터 :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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